2008년 12월 31일 수요일
대한민국 연가 (업뎃예정)
한국이라는 조국이 개인에게는 슬픔이었을 텐데, 추성훈은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국 국기와 일장기를 양 팔에 달고 경기에 서는 것이다.
가수 김장훈은 정부가 지키지 못한 독도를 지키겠다고 사비를 털어 대한민국 독도를 세계에 홍보하고 나섰다.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큐탄하는 것 보다 앞서 자발적으로 나서 독도라는 국적을 찾기 위해 나선 것.
얼마전에 아침프로에서 우주에 다녀온 김소연씨가 지구에 귀환해서 한국 국가가 나오는데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고백을 했다. 심지어 대형마트에 걸린 태극기만 봐도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온다는 체험적 기억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나는 나감해졌다.
나 역시 촌스런 국가주의를 이성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지난 올림픽 때 우리 금메달리스트들이 높은 단상에 올라가 게양된 한국국기를 바로보고 선 모습을 보고 뭉클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의 국민들에게 조국이라는 것의 의미. 실체적인 혜택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조국'이라 했을 때 갖게 되는 뜨거움 혹은 경건함의 실체.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오래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지 모르겠다.
열망과 열정의 조건
모 교수님께서 '나이가 들 수록 나는, 열망할 것을 열망한다'라고 하셨다던가.
등따숩고 배부른 나에게 전하는 어떤 메시지가 될 것이다.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보자.
'침묵하는 다수'에 대한 견해 (업뎃 예정)
마침 흘러나오는 뉴스는 언론노조 파업과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쟁점법안 문제여다.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와 시사문제를 두고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자리가 되어다.
가능하면 아버지와 그런 종류의 대하는 피하는 것이 옳았는데 오늘은 그저 대화수준의 토론이 이어졌던 것.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가 내세운 '침묵하는 다수'를 근거로 든 민주주의론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더 정리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생각난 문제에 대해서 이슈만 던져본다.
'침묵하는 다수'에 대한 견해.(updateed
TV뉴스에서 마침 나온 언론노조 파업소식과 쟁점 법안 국회 통과가 안되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아버지의 정치적 견해와 세계관이 쏟아졌다. 학창시절부터 정치적 견해가 달라 어느 때부터 뉴스를 평하는 견해는 가능하면 아버지와 하지 않곤 했는데 오늘은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형태의 토론이 간단히 벌어졌다.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침묵하는 다수'를 근거로 드는 아버지의 민주주의론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2008년 독서 목록(하반기 중심으로)
글쓰기 특강/강준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생각의 탄생 /
다산/ 에코의 서재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한국 근대사 산책 1~5/강준만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글로벌차이나
우리문화박물지/이어령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한국 근대사 산책 1~5 / 강준만
집단지성 / 피에르 레비
성찰하는 진보 / 조국
대국굴기 / 왕지아펑 외 7인
발자국 / 고종석
민족의 신화, 그 위험한 유산 / 패트릭 J 기어리
글로벌 차이나 / 이 종민
디아스포라 기행 / 서경식
행복한 실천 / 서화숙
살아있는 민주주의 / 프란시스 무어 라페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배신 / 정혜신 외
세계지성과의 대화/ 이어령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강요된 신회 (세계화와 진보 경제정책)
젊음의 탄생/ 이어령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모험 /
화폐전쟁/ 쑹훙빙
미래를 말하다 / 폴 크루그먼
슈퍼자본주의 / 로버트 라이시
조직의 재발견/ 우석훈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아담 쉐보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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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이후부터 읽은 책들이다. 생각보다 양적으로는 많이 읽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해에 비해서는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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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 노동자로 만 2년 반을 꼬박 일하면서 책은 내게서 멀어져갔다. 내가 책에서 멀어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처음에는 몸이 고단하고 격심한 노동강도로 느껴지던 업무 탓에 등따숩고 배부른 일들에 가히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다. (이를테면 두피 마사지라던가 등마사지, 보양음식과 한가로운 여행 등등) 그러다가 이제 몸도 좀 편해지고 과거에 비해 여가를 좀 가질만 할 즈음에는 효용없는 놀이(인터넷서핑하기, 쇼핑하기, 친구 만나 지리한 수다떨기, 반복되고 비효율적인 고민으로 침실에 누워있기 등등)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 (이는 차후에 자세하고 인상적으로 글을 써 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된다)을 맞이하여 나는 드디어 자발적 실업자의 길로 들어선다. 그렇게 여름의 끝자리에 나는 책을 읽었다.
퇴사를 하기 한 달 전부터 나는 이른바 책 열병에 시달렸는데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도 나의 무식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였다. 그런 무식함에 몸이 떨릴 때 마다 나의 지적 호기심도 비례하여 상승했다. 무지하다는 부끄러움보다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이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꼭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시간만 한없이 주어지면 열심히 공부 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처럼.
그래, 내게는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홉시에 출근해 때로 정시에 퇴근, 때로 야근을 하는 것. 중간중간 눈치보며 인터넷을 하고 군것질을 하는 일상, 비효율적인 업무시스템으로 아주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아주 천천히 굴러가는 거대한 공룡조직 등등. 갓 승진한 말단 직원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상 조기성숙한 편이었던 나로서는 그런 갑갑증에 목이 조여오던 순간이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사실 이쯤되어서 나의 진로고민은 그 일이 너~무 하고 싶다기 보다는 그 일은 지금 내가 하는 일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확신-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을 더 늦전, 정말 더는 늦어서 다시 시작하기가 두려워질 수 있는 나이가 오기전에 한 번 해봐야 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상은 없었지만 훗날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내게 기회를 한 번 주고 싶다는 그 생각이 학교 때 빈둥대느라 읽지 못했던 책을 맘껏 읽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핑계와 만나면서 확고한 의사결정으로 진화했던 것.
그래서 나는 다소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 퇴사를 했다. 두려운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쁘고 행복했다. 퇴사후 2달 가까이는 도서관에 출퇴근하며 책을 읽었다. 모 대학 중앙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나도몰래 나왔다.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을 닮았을 것'이라던 보르헤스의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글을 쓰고 또 책을 읽었다. 자극이 되었다. 나이만 들었지, 제대로 잘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내가 전진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여튼, 비약하기 위해 공고하게 움츠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들 사이사이에는 이내 나태해진 삶도 있었다. 하루를 마지막같이 소중하게 여기자는 첫마음을 잊고 빈둥댔던 시간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두 달간은 운동도 제법 성실하게 하고, 못 보던 지인들도 종종 만나고,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했던 시간은 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과 보낸 시간들이 많아 좋았다. 아주 오래만에 가족들과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녀왔다. 대화도 훨씬 많이 했다. 가족들을 위해 요리도 만들어봤다. 이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없다.
지난 여름, 회사를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당장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는 해보자.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더 늦으면. 이 단순하고 솔직한 마음이 나에게 반년에 가까운 휴식을 주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가장 바라던 장소는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우선 기뻐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딪치면서 거듭나는 기회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지난 반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니, 보람도 있고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아쉬움은 이제 차차 보완하고 완성하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 준 부모님과, 전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 그리고 쏘울메이트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말을 마음으로 전하고 싶어진다.
'하이브리드'와 '에너지'
2009년 이슈를 분석하는 특집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아침에 읽은 연합뉴스 <위기를 기회로>특집기사를 보니 신성장동력을 '융합, 즉 하이브리드'라 분석하고 있었다. 비슷한 주제로 지구 온난화나 에너지 위기 등은 미래적 위기라는 직감이 든다.
지난해, 그러니까 2008년. 공식적으로는 4개월, 비공식적으로는 5개월 가량 한량으로 지내면서 늦은 아침 재방송으로 방영되던 SBS 특집방송 '코난의 시대'를 읽고 나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며칠 후 도서관에서 '코난의 시대, 아톰의 시대'류의 책을 들쳐봤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만화에서 에너지박사가 코난을 옆에 세우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미래인류의 재앙'이라는 말을 바람에 날리며 전하던 것이 협박의 장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세계경제의 위기, 갑갑증이 느껴지지만 새롭게 세워져야 할 정치의 위기,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구의 위기. 이것들을 풀어가는 키워드로 '하이브리드'와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2005년도의 한가로웠던 시간.
2006년부터 2008년 여름까지 경험한 첫 직장의 추억.
2008년 하반기가 철 든 머리와 가슴으로 내공을 다진 시간이었다면
2009년부터는 지난 한량의 시간들을 회복하고 나를 담금질해 꽃피우는 일을 해야 할 터다.
내게도 '하이브리드'적 상상력과 식지 않는 '열망의 에너지'가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