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9일 목요일

"후배 상사, 안불편해요", 정말일까

삼성SDS의 인더스트리 엑스퍼트팀은 부장 3년 차가 팀장이다. 190명의 팀원 가운데 팀장보다 고참인 부장 숫자가 25명이나 된다. 이남수 삼성SDS 인사담당 그룹장은 "고참 부장들은 관리자(팀장)가 자신보다 후배라고 불편해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엔지니어들은 팀장보다는 전문가로서 성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후배 팀장 밑에서 고참 직원이 팀원으로 일하는 기업 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예전에는 후배가 고과와 결재권을 가진 팀장이 되면, 고참 직원들은 이를 퇴사하라는 회사의 압력으로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연공서열적 사고방식이 약해지고 있다.
지난달 LS산전은 183개 팀을 144개로 축소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대다수 팀장은 부장이 맡았지만, 차장 23명과 과장 1명도 팀장 보직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7명의 부장은 차장 팀장 밑으로 발령났다. 예전 같으면 이들을 '물 먹은(?)부장'으로, 구조조정 0순위로 여겨졌을 상황이다. LS산전 관계자는 "후배가 팀장이 됐다고 해서 고참 부장들이 나가버리면 회사로서도 손해"라며 "고참 부장들도 전문성을 가지고 팀원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15/2009021500635.html

[모닝커피] "후배 상사, 안불편해요"의 한 대목이다.


이 기사의 오류는 치명적이다. '연공서열 파괴가 이뤄지는 현상에 대해 후배 상사 모시기가 부담스럽지 않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듯 하다. 문제는 '왜'가 빠졌다는 것이다.


기사 중간에 그 이유를 "팀장보다는 전문가를 원하는 엔지니어"라고 멘트를 딸고 있지만 이것은 특수한 경우다.


'후배 상사'가 크게 문제될 것 없는 전문직군에 한해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인데 보다 일반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경기 불황속 바빡 엎드린 직장인들'이라던가 '획기적인 조직문화 등장'이라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후배에게 밀린 선배라는 사실이 누가봐도 분명한 상황에서 '나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특수한 상황이거나 비애가 숨어 있지 않을까.


'후배 상사, 안불편한 선배 부하'들의 마음은 진정 어떤 것인지 헤아릴 필요가 있다. '척'인지 '진실'인지 검증해야 한다는 말이다.

2009년 2월 16일 월요일

'친한 친구'에서 '여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방법



속살에 난 상처 숨기는 도시인들에게 마데카솔 같은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로맨틱 홀리데이/2006/ 케이트 윈슬렛,잭블랙,카메론 디아즈, 주드로


여자가 보면 좋다. 남자에게는 글쎄, 확신이 안 선다. 일요일 오전 OCN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라인업이 화려했다. 케이트 윈슬렛과 카메론 디아즈, 주드로, 잭 블랙이라니...
익숙한 영국의 풍경도 시선을 고정시킨 첫 번째 이유였다. 써리의 로즈힐 코티지. 영국의 흐리고 찬 겨울 날. 그 익숙한 풍경과 낯 익은 배우들 탓에 영화 속 소소한 일상 속으로 동참하게 됐다.

그녀들은 미숙했다. 미숙한 지도 모르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 그녀들이었다. 아이리스와 아만다. 그들이 공간을 바꿔 휴가를 보내기로 했을 때, 그들은 떠나고 나면 잊혀질 것들과 새로운 곳에서 만날 새로운 것들을 떠올리며 얼마간 위안 받았을이지 모른다. 새로운 공간에서 그들이 맞이하는 일상은 적어도 하루쯤은 신선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공간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흔적과 기억들은 그녀들을 괴롭힌다. 15세 이후로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성격 급한 아만다는 하루도 되지 못해 다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지만 예기치 못한 우연이 그녀를 잡는다. 영화이기에 가능할 터.

그렇다. 영화 속의 로맨틱 홀리데이는 쉽게 오지 않는다. 필붇들에게 쉽게 찾아올 리 없다는 '빈정 상한'삐죽거림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화면을 통해 밖에서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영화속의 판타지는 판타지보다 익숙하고 가능한 어떤 것처럼 여겨진다.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애인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오해한 것일 뿐'이라며 관계를 부정당한 아이리스는 '내가 무엇을 오해 했나' 자책하며 3년을 보낸다. 결국 애인이었다고 하기엔 '영 애매한' 그가 약혼자를 공개적으로 소개하던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른 채 당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이리스는 4년만의 휴가를 결심한다. 그렇게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공간, 미국의 따뜻한 지역에서 2주 동안 머물게 된다.

한편, 바람 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분에 못 이긴 채로 도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연휴'에서 도피하기로 한 아만다는 영국 서리, 아이리스 집으로 향한다.

맞바꾼 현실에 끼어드는 로맨틱한 만남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만다를 발견한 것은 아이리스의 오빠 그래이엄이었지만 그와 관계를 진전시킨 주인공은 아만다였다. 아이리스의 집을 우연히 찾아 들어온 것은 마일즈였지만 그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준 것은 아이리스 그녀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훗날 그녀에게 대단한 삶의 힌트를 주게 될 나이든 노인의 집을 찾아주는 수고로움을 자처한 것도 아이리스였다. 슬쩍 끼어든 기회를 십분 활용한 선수들은 바로 그녀들이었다는 말.

여기에 첫 번째 질문의 답이 있다. 삶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은? 답은 기회를 스스로 선점할 것.

아이리스가 머물던 아만다 옆집에 사는, 1978년도부터 쭉 한가했다는 전 영화작가 출신 아서는 주눅 든 아이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영화에는 여주인공이 있고 그 옆에 친한 친구가 있어. 아이리스 너는 여주인공과 꼭 닮았는데 왜 옆에 같이 다니는 친구처럼 행동을 하니"

주변 눈치 보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노심초사하는 아이리스
15세 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응어리진 채 관계에 미숙하지만, 그것을 진정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만다
그들이 쏘울메이트를 찾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을 열고, 제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보는 내내 '므흣'했다.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표정과 짜임새 있는 전개, 따뜻한 영상. 그래서 생각했다. 어쩌면 저런 일이 필부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의심 많은 나를 판타지로 밀어 넣은 걸 보니, 근사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두집 살림'을 한다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명언!
사랑은 규칙을 알지 못한다 – 몽테뉴오늘 사랑한다고 내일도 사랑하리라고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 루소

2006년도 봄, 책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 작가의 센스 있는 표현력에 속된 말로 '뻑이 갔'었더랬다.
파격적인? 설정에 맛깔나는 묘사력으로 나는 그야말로 환호를 지르며 책을 읽었다. '공감'과는 다소 관련이 없었을지 모른다. 어쩜 이리도 유쾌통쾌상쾌하게 글을 전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감탄을 쏟아내며 읽었던 기억이다.

햇수로 4년 후. 최근 개봉돼 떠들썩했던 영화'아내가 결혼했다'를 dvd로 봤다. 간만에 소파에 늘어져 편하게 볼 요량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영화는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전개됐다. 글로 읽었던 장면이 상상의 여지없이 '선택된' 단 하나의 화면으로 제공되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책에서 읽었던 어떤 느낌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원작자가 영화를 보고 '손예진의 눈웃음'에 책에서 묘사하던 특정 분위기가 모두 상쇄된 느낌이라고 했던 까닭을 알 법 했다. 그러니까 단 하나의 경로로 영상화된 영화 '아내, 결혼'은 책의 그것과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내가 미쳤다'고 광분해대던 남자들은 이 영화에서 '배우 손예진'과 '아내의 역할'을 분리해서 본 걸까. '아내'로서 보이는 것은 역할이고 '여자'로서 보이는 것은 손예진 자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말이다. 손예진은 너무 사랑스러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아내가 미친 것'이라고 소리칠 수 있었던가 하는데 대한 호기심이다.

영화 '아내, 결혼'은 책과 느낌은 다소 다르지만, 제법 잘 만들었다고 나는 판단했다. 이유는 관객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부 짓는 덕훈, 두 번째 남편을 죽도록 미워하는 덕훈, 그러다가 문득 사랑스러운 아내를 조금쯤 이해하게 되는 덕훈. 영화에서 주인아(손예진 분)가 어떤 성적 판타지나 급진적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두 남자와 결혼했던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쓰인 최초의 질문을 다시 보자 ."당신은 자신 있습니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영화는 그러니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던 한 여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주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다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쉬쉬 숨기며 고뇌하지만 여기서 주인아는 남편에게 이해를 바라고 새로운 남편을 얻는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홍보하던 '평상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있는가'라는 문구는 여러 곳에서 훼손된다. 그 질문이 유효하려면 주인아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를 궁금해 하는 덕훈을 나무랄 이유가 없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와 '핏줄을 확인하고픈 본능적 욕구'는 포개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어느 지점부터 패미니스트 영화로 보였다가, 새로운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영화로도 보였다가 하는 것이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가 '두 시부모를 속여 사는 일'과 교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고, 남편에게는 이해를 구해 공개적으로 새로운 남편을 얻고 싶긴 하지만, 어른들께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래서 영화의 본래 질문에 답하는 방식에서 동떨어진다.

영화는 그렇게 지그재그 방식으로 전개된다. 나는 손예진의 눈웃음에 심취했다가,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어 화면 밖으로 빠져나오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사랑스러운 보컬 '새라 바렐리스'


최근 '완소' 목소리를 찾아냈다. '새라 바렐리스'.

버스 안에서 노곤하게 기대어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큼 선곡표를 뒤졌다. 사실, 약 1년 전부터 음악보다는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게 익숙해졌다. '늙은이'들이나 뉴스를 귀에 꼽고 산다며 냉소하던 나였다. '늙은이'가 되어 가고 있는 걸까.


뉴스에 찌들어 사는 내가 안쓰러워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듣게 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문득 행복해졌다. 모른다 이유는. 목소리에 위안 받는다는 느낌을 아주 오랜만에 느낀 순간이다.


말끔히 레코딩 된 것보다 어쿠스틱 버전이 훨씬 좋다. 피아노 소리가 멋지다. 앨범 제목은 'Little Voice'인데 그녀의 존재는 결코 작지 않다.

새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의 그래비티(Gravity). 가사는 더 눈물 난다.

늘어지기 좋은 날, 늘어지고 싶어 죽겠는 날, 위안받고 싶은 날 찾아 듣게 되는 목소리다.


2009년 1월 27일 화요일

속리산 - 나희덕

속리산에서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2008년 12월 31일 수요일

대한민국 연가 (업뎃예정)

mbc파업의 영향탓인지 예전에 했던 추성훈,김장훈 관련 다큐 프로그램을 어제 운동하면서 보게 됐다.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다.

한국이라는 조국이 개인에게는 슬픔이었을 텐데, 추성훈은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국 국기와 일장기를 양 팔에 달고 경기에 서는 것이다.

가수 김장훈은 정부가 지키지 못한 독도를 지키겠다고 사비를 털어 대한민국 독도를 세계에 홍보하고 나섰다.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큐탄하는 것 보다 앞서 자발적으로 나서 독도라는 국적을 찾기 위해 나선 것.

얼마전에 아침프로에서 우주에 다녀온 김소연씨가 지구에 귀환해서 한국 국가가 나오는데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고백을 했다. 심지어 대형마트에 걸린 태극기만 봐도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온다는 체험적 기억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나는 나감해졌다.

나 역시 촌스런 국가주의를 이성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지난 올림픽 때 우리 금메달리스트들이 높은 단상에 올라가 게양된 한국국기를 바로보고 선 모습을 보고 뭉클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의 국민들에게 조국이라는 것의 의미. 실체적인 혜택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조국'이라 했을 때 갖게 되는 뜨거움 혹은 경건함의 실체.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오래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지 모르겠다.

열망과 열정의 조건

이것도 글로 써보고 싶은 주제.
모 교수님께서 '나이가 들 수록 나는, 열망할 것을 열망한다'라고 하셨다던가.
등따숩고 배부른 나에게 전하는 어떤 메시지가 될 것이다.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