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6일 월요일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두집 살림'을 한다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명언!
사랑은 규칙을 알지 못한다 – 몽테뉴오늘 사랑한다고 내일도 사랑하리라고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 루소

2006년도 봄, 책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 작가의 센스 있는 표현력에 속된 말로 '뻑이 갔'었더랬다.
파격적인? 설정에 맛깔나는 묘사력으로 나는 그야말로 환호를 지르며 책을 읽었다. '공감'과는 다소 관련이 없었을지 모른다. 어쩜 이리도 유쾌통쾌상쾌하게 글을 전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감탄을 쏟아내며 읽었던 기억이다.

햇수로 4년 후. 최근 개봉돼 떠들썩했던 영화'아내가 결혼했다'를 dvd로 봤다. 간만에 소파에 늘어져 편하게 볼 요량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영화는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전개됐다. 글로 읽었던 장면이 상상의 여지없이 '선택된' 단 하나의 화면으로 제공되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책에서 읽었던 어떤 느낌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원작자가 영화를 보고 '손예진의 눈웃음'에 책에서 묘사하던 특정 분위기가 모두 상쇄된 느낌이라고 했던 까닭을 알 법 했다. 그러니까 단 하나의 경로로 영상화된 영화 '아내, 결혼'은 책의 그것과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내가 미쳤다'고 광분해대던 남자들은 이 영화에서 '배우 손예진'과 '아내의 역할'을 분리해서 본 걸까. '아내'로서 보이는 것은 역할이고 '여자'로서 보이는 것은 손예진 자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말이다. 손예진은 너무 사랑스러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아내가 미친 것'이라고 소리칠 수 있었던가 하는데 대한 호기심이다.

영화 '아내, 결혼'은 책과 느낌은 다소 다르지만, 제법 잘 만들었다고 나는 판단했다. 이유는 관객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부 짓는 덕훈, 두 번째 남편을 죽도록 미워하는 덕훈, 그러다가 문득 사랑스러운 아내를 조금쯤 이해하게 되는 덕훈. 영화에서 주인아(손예진 분)가 어떤 성적 판타지나 급진적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두 남자와 결혼했던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쓰인 최초의 질문을 다시 보자 ."당신은 자신 있습니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영화는 그러니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던 한 여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주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다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쉬쉬 숨기며 고뇌하지만 여기서 주인아는 남편에게 이해를 바라고 새로운 남편을 얻는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홍보하던 '평상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있는가'라는 문구는 여러 곳에서 훼손된다. 그 질문이 유효하려면 주인아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를 궁금해 하는 덕훈을 나무랄 이유가 없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와 '핏줄을 확인하고픈 본능적 욕구'는 포개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어느 지점부터 패미니스트 영화로 보였다가, 새로운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영화로도 보였다가 하는 것이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가 '두 시부모를 속여 사는 일'과 교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고, 남편에게는 이해를 구해 공개적으로 새로운 남편을 얻고 싶긴 하지만, 어른들께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래서 영화의 본래 질문에 답하는 방식에서 동떨어진다.

영화는 그렇게 지그재그 방식으로 전개된다. 나는 손예진의 눈웃음에 심취했다가,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어 화면 밖으로 빠져나오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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