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6일 월요일

'친한 친구'에서 '여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방법



속살에 난 상처 숨기는 도시인들에게 마데카솔 같은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로맨틱 홀리데이/2006/ 케이트 윈슬렛,잭블랙,카메론 디아즈, 주드로


여자가 보면 좋다. 남자에게는 글쎄, 확신이 안 선다. 일요일 오전 OCN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라인업이 화려했다. 케이트 윈슬렛과 카메론 디아즈, 주드로, 잭 블랙이라니...
익숙한 영국의 풍경도 시선을 고정시킨 첫 번째 이유였다. 써리의 로즈힐 코티지. 영국의 흐리고 찬 겨울 날. 그 익숙한 풍경과 낯 익은 배우들 탓에 영화 속 소소한 일상 속으로 동참하게 됐다.

그녀들은 미숙했다. 미숙한 지도 모르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 그녀들이었다. 아이리스와 아만다. 그들이 공간을 바꿔 휴가를 보내기로 했을 때, 그들은 떠나고 나면 잊혀질 것들과 새로운 곳에서 만날 새로운 것들을 떠올리며 얼마간 위안 받았을이지 모른다. 새로운 공간에서 그들이 맞이하는 일상은 적어도 하루쯤은 신선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공간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흔적과 기억들은 그녀들을 괴롭힌다. 15세 이후로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성격 급한 아만다는 하루도 되지 못해 다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지만 예기치 못한 우연이 그녀를 잡는다. 영화이기에 가능할 터.

그렇다. 영화 속의 로맨틱 홀리데이는 쉽게 오지 않는다. 필붇들에게 쉽게 찾아올 리 없다는 '빈정 상한'삐죽거림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화면을 통해 밖에서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영화속의 판타지는 판타지보다 익숙하고 가능한 어떤 것처럼 여겨진다.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애인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오해한 것일 뿐'이라며 관계를 부정당한 아이리스는 '내가 무엇을 오해 했나' 자책하며 3년을 보낸다. 결국 애인이었다고 하기엔 '영 애매한' 그가 약혼자를 공개적으로 소개하던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른 채 당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이리스는 4년만의 휴가를 결심한다. 그렇게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공간, 미국의 따뜻한 지역에서 2주 동안 머물게 된다.

한편, 바람 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분에 못 이긴 채로 도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연휴'에서 도피하기로 한 아만다는 영국 서리, 아이리스 집으로 향한다.

맞바꾼 현실에 끼어드는 로맨틱한 만남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만다를 발견한 것은 아이리스의 오빠 그래이엄이었지만 그와 관계를 진전시킨 주인공은 아만다였다. 아이리스의 집을 우연히 찾아 들어온 것은 마일즈였지만 그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준 것은 아이리스 그녀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훗날 그녀에게 대단한 삶의 힌트를 주게 될 나이든 노인의 집을 찾아주는 수고로움을 자처한 것도 아이리스였다. 슬쩍 끼어든 기회를 십분 활용한 선수들은 바로 그녀들이었다는 말.

여기에 첫 번째 질문의 답이 있다. 삶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은? 답은 기회를 스스로 선점할 것.

아이리스가 머물던 아만다 옆집에 사는, 1978년도부터 쭉 한가했다는 전 영화작가 출신 아서는 주눅 든 아이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영화에는 여주인공이 있고 그 옆에 친한 친구가 있어. 아이리스 너는 여주인공과 꼭 닮았는데 왜 옆에 같이 다니는 친구처럼 행동을 하니"

주변 눈치 보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노심초사하는 아이리스
15세 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응어리진 채 관계에 미숙하지만, 그것을 진정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만다
그들이 쏘울메이트를 찾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을 열고, 제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보는 내내 '므흣'했다.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표정과 짜임새 있는 전개, 따뜻한 영상. 그래서 생각했다. 어쩌면 저런 일이 필부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의심 많은 나를 판타지로 밀어 넣은 걸 보니, 근사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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